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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사주(37) - 시중의 사주 풀이가 왜 잘 맞지 않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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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사주(37) - 시중의 사주 풀이가 왜 잘 맞지 않나?

천하사주 by 설암 2024. 11. 21. 16:08

▣ 시중의 사주 풀이가 왜 잘 맞지 않는가?

“사주의 역사는 3000년이 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주는 엉터리고 이현령비현령이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같은 사주로 여기 풀이가 다르고 저기 풀이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도 사주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 엄연히 자라 잡고 있습니다. 더구나 돈을 주면서 사주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지난 강론 때 설명하셨는데요? 스승님?”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설명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엉터리라고 말하면서도 사주를 보는 진짜 이유가 또 있다는 말씀인가요? 스승님?”

“그렇습니다. 말하지 않은 핵심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스승님!”

“수시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 때문입니다.”

“아!”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철학도 심리학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홍 사장과 한성과 유백이 거든다.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변합니다. 따라서 강한 것 같지만 약하고 약한 것 같지만 강합니다. 그러나 보니 본인의 마음이 약해질 때 의지하고 싶은 대상을 찾게 됩니다. 종교, 철학, 심리학, 점술과 점성학, 심지어는 무속인이라도 만나 약해진 마음을 위로받고 싶고 약해진 이유를 알고 싶어집니다. 물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결 방안도 찾고 싶습니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주를 보러 가는 핵심 이유입니다.”

“맞아! 당장 자식이 사경(死境)을 헤매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어? 사주는 물론이고 똥 통속에라도 뛰어들지!”

“고통을 당한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지! 몰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사주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지만 정작 당하면 무당, 역술인, 안 가는 데 없더군!”

“그게 거짓 없는 진짜 인간의 모습이야! 진면목! 솔직하지 못한 거지!”

또 수다 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왜 사주 풀이가 잘 안 맞을까요? 이제 사주를 보러 다니는 진짜 이유도 알았고 현실적 이유도 알았는데 왜 사주 풀이는 잘 맞지 않을까요? 경험해 보셨으니 답을 아시지 않을까요?”

“그야, 풀이하는 사람의 사주 공부가 부족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풀이하는데 왜 사람들은 돈까지 주면서 사주 보러 가나요?”

“답답하니까요!”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틀려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러다 마음에 드는 풀이를 들으면 기분 좋아지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엉터리라고 왜 욕하나요?”

“풀이대로 되지 않았으니까요!”

“역술인마다 풀이가 달랐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풀이대로 되지 않았고 역술인마다 풀이가 달랐기에 사주가 엉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주가 왜 엉터리가 되었는지? 아니, 같은 사주로 왜 다른 풀이가 나왔는지 이유를 알아보려고 한 적은 있으신가요?”

“…”

“???”

“알고 싶어도 어디 가서 알아보나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한다면 믿으실까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모두가 일시에 웃는다.

“본인만의 기준으로 믿는 사람 말은 거짓말이어도 믿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실을 말해도 갸우뚱하거나 배척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실과 거짓을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을 애당초 지니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출생 후 1년 정도 되면 아이는 걷습니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힘으로 일어서서 걷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걸으라고 부추겨도 걷지 못하더니 말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물론 모든 가족이 환호하고 기뻐하고 그 광경을 보지 못한 다른 가족이나 친지에게 자랑합니다. 아이는 어떻게 걸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출생 때 이미 걷는 DNA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스승님!”

“안타깝게도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상과 사물을 대상으로 진위(眞僞)를 분별할 DNA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학습과 교육과 경험으로 진위를 분별할 능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교육을 넘어선 세뇌교육(洗腦敎育)이라는 말까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특정 종교가 사주를 폄훼하는 일도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군요! 스승님!”

“꼭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사주가 대중적 신뢰를 잃은 것도 폄훼라는 대접을 받게 하는 이유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니 시중의 사주가 엉터리로 평가받는 이유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강론을 믿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큰소리로 외치자 모두 파안대소한다.

“이 응원을 들으려고 가설이 길었습니다.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학문이건 제안이건 강의건 주장이건 어떤 말이건 정당성을 얻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객관성입니다. 스승님!”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경우에 동일(同一)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학적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르는 사람도 가장 쉽게 앞뒤가 맞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스승님!”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이 던져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 답하신 것 모두가 정답입니다. 따라서 작금의 사주가 신뢰를 잃었다는 말은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러분께서 말한 그 조건에 모두 부합하도록 사주학이 다시 태어난다면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사주학의 본질인 인간과 인류와 삶과 역사를 바꾸는 원대한 Vision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간이 박수가 터져 나온다. 숨을 돌린다.

“이제 세상이 사주학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이 바로 사주학의 1차 Vision이 되므로 이 땅의 모든 역술인과 사주학을 공부하는 학도들이 지금부터 그것을 실천하면 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시중 사주학이 지닌 사주학적 문제점을 샅샅이 끄집어내어 하나씩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원대한 과업을 나와 나의 제자들이 할 것입니다.”

수강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진다. 청강생들 둥 몇몇도 호응한다.

 

“스승님! 시중 사주학의 첫 번째 문제점이 무엇인가요?”

“유백과 순영은 역술인 경력이 있느니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오행의 크기 결정이었습니다. 스승님!”

순영이 먼저 입을 연다. 유백도 동감한다는 표정이다.

“그렇습니다. 사주 풀이의 첫걸음은 오행 크기 판단입니다. 사주가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오행 크기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풀이가 정확해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주학을 모르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주가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구성된 오행 크기가 정확해야 풀이가 정확하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여기저기도 호응이 이어진다.

“그러면 오행 크기를 어떻게 표시해야 객관성을 얻어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가령 <크다, 작다>로 설명해야 할까요? 숫자로 크기를 나타내야 할까요?”

“그야, 당연히 숫자로 명확하게 나타내야 사주를 모르는 사람도 믿을 수 있지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숫자로 오행 크기를 나타내서 누구든 쉽게 비교할 수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겠습니다.”

한성이 눈치 빠르게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어 일어서더니 손에 사과를 들고 모두가 보이게 높이 든다.

“여기 사과가 있습니다. 자, 여러분께서 이 사과의 크기를 각자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말씀해보기 바랍니다.”

“작은데요?”

“그렇게 작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 정도면 크다고 생각합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작은 것 같은데요?”

“저도요!”

“그만하셔도 됩니다. 자, 사과는 하나인데 사과 크기에 대한 답은 제각각 다르게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떤 대답이 이 사과의 진정한 크기일까요? 더구나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 분이나 됩니다. 그러면 이 사과는 정말 작은 걸까요?”

“…”

“???”

“아!”

“그러네! 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네!”

“세 군데 중 두 군데 풀이가 비슷하다고 맞는 풀이는 아니네!”

“학교 다닐 때 시험을 봅니다. 30명 학생 중 29명이 같은 답을 썼습니다. 그러면 그 답이 정답일까요?”

“…”

“???”

“정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스승님!”

“왜 그런가? 영관이? 97%의 학생이 같은 답을 썼는데 왜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

“정답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영관이 잠시 망설이자 옆에 앉은 홍 사장이 대신 답한다.

“와우! 홍 사장님! 짱!”

여성 수강생들의 환호성이 일시에 터진다. 청강생 중 손뼉 치는 사람도 몇 있다.

 

“사주를 구성한 오행이 사과라면 사주는 크기가 제각각인 여덟 개의 사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과 하나의 크기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모르는데 여덟 개의 사과 크기는 어떻게 될까요? 이해가 안 되면 1번부터 8번까지 여덟 개의 사과를 놓고 각각의 크기를 여러분께 물어볼까요?”

“아∼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렇군요! 사과 하나도 보는 사람마다 크기가 다른데 그런 사과 여덟 개의 크기는 정말 제각각이겠군요! 이해가 갑니다! 시중의 사주 풀이가 왜 뒤죽박죽이고, 왜 여러 개가 풀이가 나오는지 분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목을 축인다.

“그렇습니다. 일부러 엉터리 풀이를 하려고 노력하는 역술인은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사주학 공부로는 오행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산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었기에 그들도 사주를 풀이할 때마다 말은 안 해도 참으로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애당초 사주학의 진정한 본질부터 깊게 깨닫고 사주학에 입문해야 했는데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기본 명제에 부닥치고 이런저런 이유까지 겹쳐서 그런 기회를 건너뛰다 보니 그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상태로 사주학의 진수를 완벽하게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또 안타깝게도 3000년이 넘는 동안 사주학을 연구한 수많은 사람 누구도 사주학의 진수를 깨달아 후대에 전달하지 못했기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살이에 떠밀려 나오다 보니 그만 욕먹는 사주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3000년 넘게 누구도 깨닫지 못한 사주학의 진수를 선생님이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말인가요?”

밖에서 서서 듣던 팔십 가까이 돼 보이는 노인이 묻는다.

“그렇습니다. 39년 사주학 공부의 결실을 깨달음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역술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기업 경영자입니다.”

“그러면 대학까지 공부했겠네요?”

“예, 46년 전에 서울대 졸업했습니다.”

“와우!”

“???”

“스승님!”

탄성이 흐른다. 정희가 조용히 빈 컵에 물을 따른다. 마신다.

 

“오행의 크기를 정확하게 산출하여 풀이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엉터리 사주 풀이의 첫 번째 원인입니다. 그러나 사주학의 첫 번째 진수인 사주수리론은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주수리론을 적용한 풀이는 객관성을 갖추었으므로 믿으셔도 됩니다.”

“오행의 크기를 어떻게 숫자로 표시한다는 말입니까?”

“보여드리겠습니다. 신륵사 강론부터 참가하셨던 분들은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사주>
신기정경
해해축자
<대운과 대운수>
7 37 77 → 대운수
경신임계갑을병정 → 대운
자축인묘진가오미
<오행 크기 표와 길흉 표시>

주력(主力)
비력(非力) 또는 운력(運力)

길흉(吉凶)
악운
한운
길운

오신(五神)
기신
구신
한신
용신
희신

오운(五運)
비겁 화
인성 목
관성 수
재성 금
식상 토

세운(細運)
비겁
겁재
편인
인수
편관
정관
편재
정재
식신
상관


10.00
0
0
10.34
29.95
47.55
13.10
10.00
28.60
14.46

본력 지수
10.00
10.34
77.50
23.10
43.06
164

10.00
0
0
10.34
0
37.20
10.00
10.00
41.00
45.46

판력 지수
10.00
10.34
37.20
20.00
86.46
164

6.10%
6.30%
22.68%
12.20%
52.72%
100%

 

“뭐야! ∼ 오!”

“???”

“하! 정말 그러네! 십간십이지 크기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네!”

“그런데 저 숫자는 선생님 마음대로 쓴 것 아니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수강생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니 슬그머니 뒤 돌아 나간다.

“사주학의 진수에 있는 오행 크기를 기준으로 깨달아 얻은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주에 같은 원리를 적용하여 오행 크기를 이 표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오! 대단하십니다.”

“그러면 이 표로 풀이를 하겠네요?”

“그렇습니다. 따라서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풀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즉 이 사주학의 첫 번째 진수(眞髓)인 사주수리론을 배우고 익히고 깨달으면 1000명의 풀이가 똑같을 것입니다. 진수(眞髓)고 진리(眞理)니까요.”

 

“스승님! 오행 크기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용신 추출도 그에 못지않게 정말 어려웠는데 이렇게 용신 추출이 너무 어려운 것도 풀이가 뒤죽박죽되는 원인일 것 같습니다.”

20년 역술인 경력의 유백이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사주학의 진수에 있는 용신본론(用神本論)을 제대로 공부하여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백 년부터 이어오는 엉터리 사주 이론을 그대로 배우고 따른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주수리론에 따라 오행 크기를 수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산출하고 용신본론에 따라 용신만 정확하게 추출하면 풀이는 정확해지는 것입니까?”

팔순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다.

“아닙니다. 수많은 사주학의 진수를 배우고 익힌 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사주학의 진수(眞髓)라는 것이 몇 가지나 됩니까?”

“하나씩 세어보지 않아 정확하게 몇 가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림잡아도 100가지는 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세부 진수까지 합치면 200가지도 넘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걸 모두 공부하고 익혀야 합니까?”

“공부하고 익히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수 상호 간의 원활한 흐름이 막혀 완벽한 풀이를 창출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사주학을 누구한테 배웠고 언제부터 공부했나요?”

“우연한 계기가 있어 혼자 공부했고 올해로 39년 되었습니다.”

“와우!”

“???”

또 한차례 탄성이 흐른다.

 

“그러면 우리처럼 사주에 문외한인 사람이 지금부터 배운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사람의 근기(根基)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사주학과의 인연에 따라 다르고요. 따라서 평생을 다 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교의 돈오(頓悟)처럼 단박에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 수강생이 여러 명 있는 것 같은데 더 받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말씀드렸습니다. 사주학의 진수는 인간 개개인은 물론 인류와 모든 인간사에 일대 변화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자 Vision입니다. 따라서 이 위대한 도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삶과 역사가 밝은 방향으로 변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저도 정식으로 다음 주부터 제자가 되겠습니다.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스승님!”

허리 굽혀 인사까지 한다.

“저도요!”

“저도요!”

“자, 새롭게 참여하시고 싶으신 분은 집에 가셔서 한 번 더 깊게 생각하시고 결정하신 후 다음 주에 나오시면 됩니다.”

목을 축인다. 오늘 강론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사주학의 진수는 위대합니다. 어떤 종교, 어떤 학문도 견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주학은 대단히 실용적이고 냉철하며 직설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生)과 사(死)를 본질에 근거하여 근본적으로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상적이거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은 용납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시중의 사주학은 이 대원칙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월이 3000년이 넘다 보니 폄훼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사주학의 진수인 사주수리론이 우리 곁에 엄연히 나타났고 이를 따르려는 사람이 이미 출현했으며 머지않아 많은 사람이 자발적이 동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상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위대하며 무엇이 본인과 가족과 일상을 위해 진정으로 나갈 길인지는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론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다음 강론은 여주 한강보 3층에서 하겠습니다. 주제는 <범죄와 범인>입니다.”